8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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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천호동 골목은 낮에 보던 동네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논이 남아 있어서 겨울 새벽이면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 매서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했고,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제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종로 쪽 새벽 단과학원에 가기 위해 첫차를 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거기에 새벽 공부까지 하려니 잠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이 오고, 조금 있다 또 한 명이 오면서 어느새 몇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도 있었고, 작은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밤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인지, 저처럼 이제 하루를 시작하러 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류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올 때마다 어둠 속 얼굴이 잠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저를 봤다면 저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을 겁니다. 가방을 메고 있으니 학생처럼 보였겠지만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고, 새벽에는 종로까지 공부하러 갔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첫차에 타면 책이라도 조금 봐야겠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 문이 열리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무...

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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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천호동 골목은 낮에 보던 동네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논이 남아 있어서 겨울 새벽이면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 매서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했고,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제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종로 쪽 새벽 단과학원에 가기 위해 첫차를 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거기에 새벽 공부까지 하려니 잠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이 오고, 조금 있다 또 한 명이 오면서 어느새 몇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도 있었고, 작은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밤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인지, 저처럼 이제 하루를 시작하러 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류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올 때마다 어둠 속 얼굴이 잠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저를 봤다면 저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을 겁니다. 가방을 메고 있으니 학생처럼 보였겠지만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고, 새벽에는 종로까지 공부하러 갔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첫차에 타면 책이라도 조금 봐야겠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 문이 열리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무...

비 오는 날 달리기 연습이 더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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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람보다 물이었습니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었고, 트랙 위에도 빗물이 얇게 번져 있었습니다. 비가 아주 세게 내리는 날은 아니었지만 우산 없이 오래 서 있으면 옷이 금방 젖을 정도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을 텐데 그날은 이상할 만큼 한산했습니다.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바라봤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도 안 뛰고 가기는 또 아쉬웠습니다. 결국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천천히 운동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시원해서 괜찮았다 처음 몇 바퀴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제 발소리만 들으며 달릴 수 있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오히려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운동복이 젖으면서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양말에도 서서히 물기가 들어왔습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운동화 안에서 축축한 느낌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계속 발 쪽으로 마음이 갔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밟던 운동장 바닥도 그날은 자꾸 내려다봤습니다. 혹시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싶어 발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디뎠습니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넘어지지 않는 게 먼저였습니다. 말없이 마주친 사람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운동장을 돌다가 다른 사람 한 명과 마주쳤습니다. 그 사람도 비를 맞으면서 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지나갈 때 서로 한번 웃었습니다. 무슨 말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만 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바퀴가 지나자 그 사람은 먼저 운동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누가 시킨 운동도 아니었습니다. 그...

겨울 야간조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 모이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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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문을 나서던 순간이 아직도 이상하게 또렷합니다. 안에서는 기계 열기 때문에 추운 줄도 몰랐는데, 밖으로 한 발 내딛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손끝은 금세 얼얼해졌고, 작업복 지퍼를 목까지 올린 뒤 두 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습니다. 하루 종일 귀를 채우던 기계 소리는 멀어지고, 그 자리에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공장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야간조가 끝나는 시간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거의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낮에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바쁘게 일하던 사람들이었지만, 밖으로 나오면 모두 비슷한 얼굴이 됐습니다. 피곤했고,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금세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로 찼습니다. 기름때가 조금 묻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낡은 가방 안에 빈 도시락통을 넣어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사람들은 의자가 비면 말없이 먼저 앉았습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두 손을 비비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참 신기했던 게, 평소 말이 많던 사람들도 그 시간만 되면 조용해졌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그렇게 농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정류장에서는 버스 오는 방향만 바라봤습니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피곤한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멀리 불빛만 보여도 모두 고개를 들었다 버스가 늦어지는 날이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왜 이렇게 안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대답 대신 고개만 한번 끄덕였습니다. 멀리서 불빛이 나타나면 다들 거의 동시에 도로 쪽을 바라봤습니다. 버스인가 싶어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른 차라는 걸 알면 다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몇 번씩 반복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이상하게 아직 기억납니다. 솔직히 그때는 버스 몇 분 늦는 것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

CRT 모니터 소리 가득하던 컴퓨터 학원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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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해가 금세 넘어갔습니다. 학원 간판에 불이 켜질 무렵이면 거리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두꺼운 점퍼를 입은 학생들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볼은 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교실 안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온기가 감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저녁은 늘 같은 시간에 시작됐는데도 하루하루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들리던 소리 학원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 목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와 CRT 모니터 전원을 켤 때 들리던 특유의 "삐-" 하는 소리였습니다.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는 동안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만지거나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처럼 얇은 모니터가 아니었습니다. 책상 위를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교실이 훨씬 좁아 보였고, 복도를 오갈 때도 몸을 살짝 비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런 모습도 하나의 시대였습니다. 키보드 소리가 교실을 채우던 시간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빠르게 타자를 치는 학생도 있었지만 자판을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입력하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저는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화면을 살펴보고, 막히는 학생이 있으면 옆에 서서 같이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모니터 뒤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은근히 올라왔습니다. 겨울이었지만 교실 안은 생각보다 포근했고, 오래 앉아 있으면 외투를 벗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복도에는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며 아이를 찾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오늘은 몇 타 나왔어요." 하며 서로 기록을 비교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 웃음소리 덕분에 늦은 시간의 피곤함도 잠시 잊곤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