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그 시절 생활 현장 기록 화려한 성공 이야기는 없습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던 시절, 야간학교를 다니던 날들, 컴퓨터 학원 강사와 원장으로 살아온 시간, 대치동 학원가의 밤 풍경, 김포 신도시가 막 만들어지던 모습, 마라톤 현장과 코로나 시절의 거리까지. 이 블로그는 한 사람이 직접 살아오며 보고 느꼈던 생활 현장의 기록입니다. 새벽 버스정류장의 공기, 늦은 밤 학원 복도의 정적, 생활비를 계산하던 식탁 위의 풍경, 먹고살기 위해 버티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하게 된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학원 이야기, 공장 이야기, 마라톤 이야기, 새벽 거리 이야기, 중년 노동 이야기, 생활비 고민 이야기까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쳐온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남겨보려 합니다.
공장 문을 나서던 순간이 아직도 이상하게 또렷합니다. 안에서는 기계 열기 때문에 추운 줄도 몰랐는데, 밖으로 한 발 내딛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손끝은 금세 얼얼해졌고, 작업복 지퍼를 목까지 올린 뒤 두 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습니다. 하루 종일 귀를 채우던 기계 소리는 멀어지고, 그 자리에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야간조가 끝나는 시간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거의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낮에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바쁘게 일하던 사람들이었지만, 밖으로 나오면 모두 비슷한 얼굴이 됐습니다. 피곤했고,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금세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로 찼습니다. 기름때가 조금 묻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낡은 가방 안에 빈 도시락통을 넣어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사람들은 의자가 비면 말없이 먼저 앉았습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두 손을 비비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참 신기했던 게, 평소 말이 많던 사람들도 그 시간만 되면 조용해졌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그렇게 농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정류장에서는 버스 오는 방향만 바라봤습니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피곤한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버스가 늦어지는 날이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왜 이렇게 안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대답 대신 고개만 한번 끄덕였습니다.
멀리서 불빛이 나타나면 다들 거의 동시에 도로 쪽을 바라봤습니다. 버스인가 싶어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른 차라는 걸 알면 다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몇 번씩 반복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이상하게 아직 기억납니다.
솔직히 그때는 버스 몇 분 늦는 것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씻고 잠들어야 했고, 다음 날이면 다시 출근해야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넉넉한 생활이 아니었으니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던 버스가 들어오면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움직였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따뜻한 공기가 얼굴로 밀려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습니다. 자리가 있으면 앉았고, 없으면 손잡이를 잡고 섰습니다. 누구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버스에 탔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졸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손잡이를 잡은 채 꾸벅꾸벅 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몇 번이나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했습니다. 몸은 집으로 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반쯤 잠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게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간혹 포장마차 불빛만 환하게 남아 있었고, 그 앞에 몇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웃긴 건 그때는 그런 풍경을 보면서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이 먼저 내릴 때면 "내일 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음 날이면 공장에서 다시 만날 사람인데도 그 짧은 인사가 이상하게 따뜻했습니다. 저도 손을 한번 들어 보이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는 서로 힘들다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게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생활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했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갔고, 몇 시간 자고 다시 출근했습니다.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돌아볼 여유는 별로 없었습니다.
요즘 겨울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때면 예전보다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 더 보게 됩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작업복 차림으로 서 있던 그 시절 사람들이 잠깐 떠오릅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거의 잊었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바람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모습과 문이 열렸을 때 얼굴에 닿던 따뜻한 공기만은 묘하게 남아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겨울밤 정류장 앞을 지나면 가끔 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게 됩니다. 그러면 아주 잠깐, 기계 소리를 뒤로하고 공장 문을 나서던 그날의 차가운 공기가 다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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