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그 시절 생활 현장 기록 화려한 성공 이야기는 없습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던 시절, 야간학교를 다니던 날들, 컴퓨터 학원 강사와 원장으로 살아온 시간, 대치동 학원가의 밤 풍경, 김포 신도시가 막 만들어지던 모습, 마라톤 현장과 코로나 시절의 거리까지. 이 블로그는 한 사람이 직접 살아오며 보고 느꼈던 생활 현장의 기록입니다. 새벽 버스정류장의 공기, 늦은 밤 학원 복도의 정적, 생활비를 계산하던 식탁 위의 풍경, 먹고살기 위해 버티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하게 된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학원 이야기, 공장 이야기, 마라톤 이야기, 새벽 거리 이야기, 중년 노동 이야기, 생활비 고민 이야기까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쳐온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남겨보려 합니다.
겨울이 되면 해가 금세 넘어갔습니다. 학원 간판에 불이 켜질 무렵이면 거리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두꺼운 점퍼를 입은 학생들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볼은 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교실 안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온기가 감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저녁은 늘 같은 시간에 시작됐는데도 하루하루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학원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 목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와 CRT 모니터 전원을 켤 때 들리던 특유의 "삐-" 하는 소리였습니다.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는 동안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만지거나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처럼 얇은 모니터가 아니었습니다. 책상 위를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교실이 훨씬 좁아 보였고, 복도를 오갈 때도 몸을 살짝 비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런 모습도 하나의 시대였습니다.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빠르게 타자를 치는 학생도 있었지만 자판을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입력하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저는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화면을 살펴보고, 막히는 학생이 있으면 옆에 서서 같이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모니터 뒤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은근히 올라왔습니다. 겨울이었지만 교실 안은 생각보다 포근했고, 오래 앉아 있으면 외투를 벗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복도에는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며 아이를 찾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오늘은 몇 타 나왔어요." 하며 서로 기록을 비교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 웃음소리 덕분에 늦은 시간의 피곤함도 잠시 잊곤 했습니다.
그때는 집에 컴퓨터가 없는 학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도 조금만 더 연습하고 가겠다고 남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시간이 괜찮은 날이면 "조금 더 해 보고 가라." 하며 자리를 그대로 열어주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보다 눈을 비비면서도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신기하다며 활짝 웃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플로피디스크를 조심스럽게 들고 다니던 모습도 괜히 생각납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크게 웃고, 저장을 하지 못해 다시 처음부터 입력하면서도 금세 기운을 되찾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던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사람들의 표정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학부모들도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은 컴퓨터를 꼭 배워야 한다더라고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기대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낯선 세상을 따라가야 한다는 걱정도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학생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교실이 조용해지면 저는 컴퓨터 전원을 하나씩 끄며 빈 자리를 둘러봤습니다. 모니터 화면이 꺼질 때 들리던 작은 소리, 의자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는 소리, 칠판 지우개를 털던 소리까지 모두 하루를 마무리하는 익숙한 순서였습니다.
창밖에는 학원 간판 불빛만 남아 있었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었습니다. 저 역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면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컴퓨터는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CRT 모니터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직도 겨울 저녁이 되면 그 교실 안을 가득 채우던 키보드 소리와 모니터 전원이 켜지던 소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시절에는 평범했던 하루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밤들이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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