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고 나서 새벽 일이 더 무겁게 느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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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닫혔다. 새벽이라 그런지 버튼을 누르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창밖은 아직 검은빛이 남아 있었고, 아파트 복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얼굴에 닿는 서늘한 공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받아들이는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지는 날이 있다. 세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멀리서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청소차가 천천히 골목을 지나간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거리는 이미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새벽이 두렵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새벽이 오히려 편했다. 공장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고, 야간학교를 다니며 첫차를 타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부족해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몸은 피곤했지만 움직이는 속도만큼은 빨랐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힘들다기보다 익숙한 일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거워졌다 중년이 되고 나서는 같은 새벽인데도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고, 신발을 신으면서도 허리를 한 번 더 펴게 됐다. 괜히 무릎도 한 번 움직여 보고 가방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뒤에는 새벽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됐다. 호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첫차를 기다리는 청소 노동자, 조용히 출근하는 경비원까지. 말은 거의 없었지만 얼굴에는 익숙한 하루를 시작하는 표정이 있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인사가 큰 힘이 되는 날도 있었다. 생각이 많아진 새벽이었다 솔직히 몸이 약해져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새벽이 무겁게 느껴진 건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가족 생각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도 떠올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젊었을...

카드 펀칭 시절 전산교육이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

제가 솔직히 처음 전산교육 받으러 갔을 때는 내가 거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그전까지는 종이 넘기고 손으로 적는 게 익숙했었다. 공장에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그렇고, 뭔가를 기록한다는 건 늘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을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라고 하니까 괜히 긴장됐다. 카드 펀칭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라는 게 지금처럼 생활 속 물건이 아니었다. 괜히 특별한 사람들이 다루는 기계처럼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전산 교육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도,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엔터키 하나도 조심스럽던 시절

8비트 컴퓨터가 일반화 되던 시절의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작은 교육장이었는데 오래된 CRT 모니터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화면은 초록빛이었고, 키보드 소리가 교실 안에 계속 울렸다. 강사가 앞에서 설명하는데 옆 사람들은 고개 끄덕이면서 잘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엔터키 누르는 것도 괜히 부담이 되고 망설여졌다.

잘못 누르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데, 그때는 진짜 그랬다. 저장 하나 잘못하면 회사 자료 다 날아가는 줄 알았다. 의외로 그런 사람 많았다. 마우스를 움직이면서도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막상 해보니까 어려운 건 컴퓨터 자체보다 마음이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다는 느낌. 예전에는 손으로 하던 일이 갑자기 화면 안으로 들어가고, 종이 대신 디스크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오니까 괜히 내가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다들 조금씩 헤맸다

요즘은 다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쓰고 인터넷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때 전산교육 받으러 오던 사람들 생각해보면 다들 비슷했다. 공장 다니던 사람도 있었고, 경리 보던 아주머니도 있었고, 야간학교 다니다 배우러 온 사람도 있었다.

참 신기했던 게 있다. 컴퓨터 잘하는 사람보다 그냥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더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다들 겁을 냈다. 키보드 자판 외우는 것도 힘들어했고, DOS 명령어 하나 치는데 손이 덜덜 떨리던 사람도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C:” 치고 엔터 누르는 게 왜 그렇게 긴장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또 몸이 익숙해졌다. 사람이라는 게 참 그렇다. 처음엔 낯설어도 계속 보다 보면 또 적응한다.

기계를 배우는 게 아니라 시대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전산교육은 단순히 기술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시대를 따라가기 위해 버티는 시간이 더 가까웠다. 카드 펀칭 시절 지나고 코볼, 포트란 같은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외계어 같았다.

군대 있을 때 FDC 보직 맡았던 사람들도 숫자 코드 외우느라 고생 많이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복잡했을까 싶지만, 또 그 시절에는 그게 최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DOS가 나오고, 나중에는 윈도우 화면이 등장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참 재미있었다.

마우스로 창 움직이는 것만 봐도 다들 신기해했다. 어떤 분은 마우스를 들고 허공에서 움직였다. 웃기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다들 자기 것도 어려워 했으니까.

나중에는 내가 설명하는 입장이 됐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나도 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 처음 칠판 앞에 섰을 때 긴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학생들보다 가르키는 내가 더 떨렸다. 수업 끝나고 학원에 혼자 남아서 칠판 다시 지우고 연습했던 날도 많았다.

그때 교육생들 표정을 보면 예전 내 모습이 보였다. 괜히 엔터키 세게 못 누르고, 저장하기 전에 자꾸 나를 쳐다보던 사람들. 그래서인지 나는 설명할 때 너무 빨리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모른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나도 겪어봤으니까.

IMF 지나고 실직자 재교육하러 오던 사람들도 기억난다. 다들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컴퓨터 하나 배우겠다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연습했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다들 절박했을까 싶다가도, 또 생각해보면 먹고살기 위해 버티던 시대였던 것 같다.

지금은 당연한 것도 그때는 낯선 일이었다

요즘은 아이들도 태블릿 만지면서 자란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화면 하나 켜는 것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새로운 기계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못 따라갈까 봐 겁내는 거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들 조금씩 헤매면서 배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원래부터 잘했던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는 아니었다. 다들 엔터키 하나 누르는 것도 조심스럽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오래된 CRT 모니터 사진만 보면 괜히 그 교육장 냄새가 떠오른다. 조용한 교실, 긴장된 손, 카드 펀칭 기계 돌아가던 소리 같은 것들. 결국 남는 건 기술 이름보다, 그 안에서 버티던 사람들 모습인 것 같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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