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 새벽 불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던 날

편의점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따뜻한 공기가 잠깐씩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앞에 서 있던 학생들은 종이컵 음료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겨울 끝자락의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시험을 앞둔 마음 때문이었는지 다들 말수가 적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강의를 마치고 상담을 하고, 학부모 전화를 받고, 교실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유리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로 가득했던 대치동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날은 거리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학원 간판은 아직 몇 군데 켜져 있었다. 건물마다 층층이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밝기는 충분했는데 차갑게만 보였다.

길 건너편에서 학원 건물을 바라보니 창문 너머로 아직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문제집을 넘기는 모습이었다. 어떤 학생은 잠깐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그때는 그런 장면을 매일 봤다.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봤고, 운영을 하면서도 늘 보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날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도시 전체가 조용히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 앞에 서 있던 학생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끼리 장난도 치고 웃음소리도 들렸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시험 기간이 가까워서였는지 피곤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잠깐 쉬러 나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의외로 그런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성적표를 받던 순간보다, 합격 소식을 들었던 순간보다, 편의점 앞에서 말없이 서 있던 학생들 표정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 나이에는 누구나 보이지 않는 짐을 하나씩 들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버티며 살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도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새벽 첫차를 타고 학원을 다니던 날들도 있었다. 강사가 된 뒤에는 수업 준비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일이 많았다.

IMF 시절에는 실직자 교육을 하면서 새로운 수강생들을 만났고, 컴퓨터 학원이 가장 바쁠 때는 밤늦게까지 교재를 만들고 복사기를 돌리기도 했다.

웃긴 건 당시에는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는 점이다. 학생은 학생대로, 강사는 강사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게 살아갔다.

누가 더 힘든지 따질 틈도 없었다.

불 꺼진 복도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치동도 많이 달라졌다. 학원도 바뀌고 거리 풍경도 달라졌다.

그런데 괜히 생각나는 건 화려한 간판이 아니다.

불 꺼진 복도.

복사기에서 천천히 식어가던 잔열 냄새.

창가에 쌓여 있던 교재 더미.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학생들 모습이다.

참 신기했던 게 사람은 결국 공간보다 그 안에 있던 사람을 기억하는 것 같다. 오래된 CRT 모니터나 플로피디스크보다 함께 공부하던 학생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대리운전을 하며 새벽 거리를 지나는 지금도 가끔 학원가 불빛을 보면 그날이 떠오른다. 유난히 차갑게 보였던 형광등 불빛과 말없이 걷던 학생들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그 새벽은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아 있다. 아마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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