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장 트랙을 돌며 생각이 많아졌던 시절
그 시절 생활 현장 기록 화려한 성공 이야기는 없습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던 시절, 야간학교를 다니던 날들, 컴퓨터 학원 강사와 원장으로 살아온 시간, 대치동 학원가의 밤 풍경, 김포 신도시가 막 만들어지던 모습, 마라톤 현장과 코로나 시절의 거리까지. 이 블로그는 한 사람이 직접 살아오며 보고 느꼈던 생활 현장의 기록입니다. 새벽 버스정류장의 공기, 늦은 밤 학원 복도의 정적, 생활비를 계산하던 식탁 위의 풍경, 먹고살기 위해 버티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하게 된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학원 이야기, 공장 이야기, 마라톤 이야기, 새벽 거리 이야기, 중년 노동 이야기, 생활비 고민 이야기까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쳐온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남겨보려 합니다.
식당 쪽으로 걸어가다가 따뜻한 국물 냄새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 냄새를 맡고서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밥 먹을 시간을 기다릴 여유조차 별로 없었던 때였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처음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많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일을 따라가며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기계가 계속 돌아갔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특별히 마음이 들뜨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을 멈추고 식당 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일하던 자리에서 떨어져 식당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음식 냄새가 있었습니다.
특히 따뜻한 국물 냄새가 나면 갑자기 속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그 냄새 하나가 몸을 먼저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식당에는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별말 없이 자기 앞에 놓인 밥을 먹었습니다. 저도 빈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날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도 흐릿합니다. 오래된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식판 위에 무엇이 놓여 있었는지까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국물을 떠먹던 느낌만은 남아 있습니다.
일이 고된 날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급했습니다. 다 먹으면 다시 기계 앞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식사 시간이 넉넉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잠깐 일을 멈춘 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굳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하루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하게 생각할 힘조차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런 걱정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다시 일하러 가야 했고 하루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밥을 먹는 그 짧은 동안만큼은 눈앞의 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사람들도 그때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하다 밥때가 되면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도 그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서 그 공장 식당의 모습은 또렷하지 않습니다. 식탁이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 어느 자리에 주로 앉았는지 같은 것은 기억에서 많이 흐려졌습니다.
그런데 국물 냄새는 묘하게 남아 있습니다. 긴 시간 일하다 식당으로 걸어가던 순간과 함께 떠오릅니다.
당시에는 그 시간을 위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먹고 나면 다시 일을 하는 하루였습니다.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래 지나고 나니 하루 종일 기계 앞에서 움직이던 시간보다 숟가락을 들고 잠깐 앉아 있었던 그 짧은 시간이 더 선명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가 아직 한참 남아 있던 때, 따뜻한 국물 냄새가 나는 식당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