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learning-experience인 게시물 표시

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이미지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천호동 골목은 낮에 보던 동네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논이 남아 있어서 겨울 새벽이면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 매서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했고,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제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종로 쪽 새벽 단과학원에 가기 위해 첫차를 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거기에 새벽 공부까지 하려니 잠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이 오고, 조금 있다 또 한 명이 오면서 어느새 몇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도 있었고, 작은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밤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인지, 저처럼 이제 하루를 시작하러 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류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올 때마다 어둠 속 얼굴이 잠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저를 봤다면 저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을 겁니다. 가방을 메고 있으니 학생처럼 보였겠지만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고, 새벽에는 종로까지 공부하러 갔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첫차에 타면 책이라도 조금 봐야겠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 문이 열리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무...

방과후 컴퓨터 수업이 학생들에게 인기였던 이유

이미지
“선생님, 오늘도 컴퓨터실 가는 거 맞죠?” 학교 복도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졌다. 종이 울리기 전부터 문 쪽을 바라보던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컴퓨터실은 아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공간이었다. 늦은 오후 햇빛이 창문으로 길게 들어오던 날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컴퓨터실 앞에는 늘 작은 줄이 만들어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 때문에 복도가 시끌시끌해지곤 했다. 컴퓨터실 문이 열리던 순간 이상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소리가 있다. 본체 전원 버튼을 누르면 들리던 "위잉" 소리다. CRT 모니터가 천천히 밝아지고 검은 화면 위에 글자가 하나씩 나타나면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신기해했다. 그 시절에는 집에 컴퓨터가 없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컴퓨터를 만져볼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자리에 앉았다. 어떤 학생은 친구 화면을 구경하러 다녔고, 어떤 학생은 마우스를 먼저 잡아보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그때는 작은 축제 같았다. 교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 웃긴 건 평소 수업 시간에 졸던 학생들도 컴퓨터실에서는 눈이 반짝였다는 점이다. 교실에서는 조용하던 아이가 그림판을 켜면 가장 적극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름을 크게 써서 꾸미고, 색을 바꾸고, 친구 얼굴을 흉내 내어 그림을 그리면서 깔깔 웃었다. 성장기 학생들을 상담하던 시절에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억지로 시켜서 움직이는 것보다 스스로 재미를 찾을 때 훨씬 집중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아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커서 하나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고,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바뀌는 것 자체가 재미였다. 나 역시 컴퓨터에 설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컴퓨터를 잘 알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니던...

IMF 때 실직자 교육 컴퓨터 학원이 희망을 나누다

이미지
IMF 시기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공기가 조금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때는 뉴스만 봐도 분위기가 달랐고, 거리도 조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학원 문을 열면서도 오늘은 몇 명이나 올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문을 열었는데 이미 몇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말은 거의 없고, 그냥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조용하게 시작된 수업 수업을 시작해도 분위기는 비슷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고, 말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손을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틀릴까 봐 천천히 눌러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막상 해보면 간단한 내용인데도, 그때는 하나하나가 부담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옆에서 설명을 하면서도 괜히 말을 줄이게 됐습니다. 설명보다 분위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며칠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진 공기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말을 안 하던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 옆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같은 짧은 말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그 작은 변화가 컸습니다. 웃는 소리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면을 같이 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컴퓨터를 배우는 시간인데, 그 안에서 사람 사이가 먼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술보다 먼저 움직였던 사람들 처음에는 다들 기술을 배우러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더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컴퓨터는 도구였고, 그 도구를 통해 다시 시작해보려는 마음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빠르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각자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배우는 속도보다, 다시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 보이던 시기였다.”...

286부터 586까지, 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한 나의 학원

이미지
예전 학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숫자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286, 386, 486, 586… 솔직히 그때는 그냥 숫자만 바뀌는 줄 알았습니다. 뭐가 그렇게 다른지도 잘 몰랐고요. 그런데 막상 그 안에서 지내보니까 그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학원 공기 자체가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286을 들여놨을 때 처음 286 컴퓨터를 들여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전원을 켜고 프로그램 하나 실행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학생들이 옆에서 기다리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한숨 쉬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막상 해보면 그게 당연한 속도였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좀 애매했습니다. 설명을 하다가도 중간에 멈추게 되고, 학생들 집중도도 조금씩 끊기고요. 그래도 그때는 다들 그렇게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386, 486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진 분위기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가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386으로 바뀌고, 486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 변화가 처음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 보니까 의외로 차이가 보였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설명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학생들도 덜 지루해했고요. 조용히 앉아 있던 분위기에서, 같이 움직이는 느낌으로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 286부터 586까지, 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한 나의 학원 586으로 넘어오면서 느껴진 변화 586으로 넘어왔을 때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같은 작업을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클릭하면 바로 반응이 오니까 학생들도 바로 따라왔습니다. 솔직히 그때부터 수업이 편해졌습니다. 하나하나 끊어서 설명하기보다, 흐름을 이어서 같이 갈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도 “왜 안 되지?”보다 “다음은 뭐지?”라는 반응이 많아졌습니다. 기계가 바뀌면 사람도 같이 바뀐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컴퓨터만 빨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같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느릴 때는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빨라지니까 따라...

8비트 시절, 애플과 SPC-1000에서 모든 게 시작되다

이미지
요즘 컴퓨터를 생각하면 빠르고 편한 게 먼저 떠오릅니다. 버튼 몇 번 누르면 다 되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가끔은 반대로 생각이 듭니다. 너무 쉬워서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8비트 시절입니다. 처음 애플이랑 SPC-1000을 만졌던 그날이요. 처음 만졌던 낯선 기계 그날은 친구 집 작은 방이었습니다. 방 한쪽에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본체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옆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놓여 있었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라 그냥 계속 쳐다봤습니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나면 바로 되는 게 아니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중간에 소리가 끊기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꽤 번거로운 방식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했습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긴장됐던 기억이 납니다. 느린 화면, 이상하게 빠른 집중 화면에는 글자가 한 줄씩 올라왔습니다. 요즘처럼 바로 뜨는 게 아니라 조금씩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눈을 못 떼고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단순한 화면인데, 그때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단순함이 더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하나에 더 집중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막상 해보면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처음에는 컴퓨터라고 하면 뭔가 대단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대신 그 단순함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게 답답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해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불편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시간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줄이 올라올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빠른 결과보다 기다리는 과정이 더 오래 남는 경우도 있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