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고 나서 새벽 일이 더 무겁게 느껴진 이유
그 시절 생활 현장 기록 화려한 성공 이야기는 없습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던 시절, 야간학교를 다니던 날들, 컴퓨터 학원 강사와 원장으로 살아온 시간, 대치동 학원가의 밤 풍경, 김포 신도시가 막 만들어지던 모습, 마라톤 현장과 코로나 시절의 거리까지. 이 블로그는 한 사람이 직접 살아오며 보고 느꼈던 생활 현장의 기록입니다. 새벽 버스정류장의 공기, 늦은 밤 학원 복도의 정적, 생활비를 계산하던 식탁 위의 풍경, 먹고살기 위해 버티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보를 설명하기보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하게 된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학원 이야기, 공장 이야기, 마라톤 이야기, 새벽 거리 이야기, 중년 노동 이야기, 생활비 고민 이야기까지.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쳐온 평범한 일상을 천천히 남겨보려 합니다.
운동화 끈을 또 한 번 당겨 묶었다. 이미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왠지 헐거운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새벽이었다. 입김은 하얗게 흩어졌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발걸음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 시간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출발선 근처는 어느새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가볍게 뛰며 몸을 푸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람까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회자의 안내 방송도 또렷했고, 번호표를 만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귀에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침착해 보였다. 그런데 나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솔직히 달리는 것보다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힘들었다.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록도 모르고 코스도 낯설었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 내가 가장 초보처럼 느껴졌다.
막상 지나고 보니 첫 마라톤은 다리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하는 경기였다.
출발 직전이 되자 주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수백 명이 함께 서 있었지만 모두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목시계를 눌렀고, 누군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괜히 따라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참 신기했던 게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직 한 걸음도 뛰지 않았는데 심장은 이미 결승선 근처까지 달려간 것처럼 뛰고 있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사람들은 한꺼번에 뛰지 않았다. 처음에는 걷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앞사람 등을 따라 조금씩 발을 옮기다 보니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고, 길가에서 손을 흔들던 아이들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출발선만 넘었을 뿐인데 조금 전까지 무겁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의외로 가장 어려운 건 달리는 일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여러 대회에 참가했고, 마라톤 봉사도 하면서 많은 출발선과 결승선을 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첫 출발선 앞에 서 있던 내 모습이다.
운동화 끈을 몇 번이나 다시 만지고, 괜히 주변 사람들만 바라보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깊게 숨을 쉬던 그 순간 말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툴다. 그 서툰 마음을 안고 한 걸음을 내디뎠던 새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그날 새벽 공기가 문득 떠오른다. 긴장은 여전하지만 출발선만 지나면 조금씩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그 첫 마라톤이 가르쳐 주었다.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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