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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장 트랙을 돌며 생각이 많아졌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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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구간을 지나 다시 직선으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전에도 지나간 자리였는데 몇 바퀴를 돌고 나면 같은 곳이 또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운동장 트랙에서 달릴 때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새벽이라 주변은 조용했습니다. 처음 몇 바퀴는 앞쪽을 보면서 달렸습니다. 몸이 아직 덜 풀렸을 때는 발을 옮기고 호흡을 맞추는 데 신경이 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 엉뚱하게도 낮에 해야 할 일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의 몸은 트랙에 있는데 마음은 벌써 사무실에 가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같은 자리를 돌면 같은 생각도 돌아왔습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강변에서도 뛰고 언덕에서도 연습했습니다. 운동장 트랙은 그런 곳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곡선과 직선이 이어진 같은 길을 계속 돌면 됐습니다. 함께 훈련하는 날에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게 됐습니다. 앞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살피기도 하고 내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지도 신경 썼습니다. 그러다 혼자 뛰는 날이면 그런 것에서 조금 자유로웠습니다. 내 속도로 달릴 수 있으니 편할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용히 뛰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가 어제 끝내지 못한 일이 따라왔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 끝나는가 싶으면 사무실 일이 또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제자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날에는 운영비 걱정이 남았습니다.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 날에도 미뤄 둔 일이 생각났습니다. 트랙을 돌면서 이런 방법은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조금 나아질까 생각했습니다. 한참 생각하고 곡선 구간을 돌아 다시 직선으로 들어오면 조금 전 했던 고민을 또 하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몸은 분명 계속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같은 문제를 몇 바퀴씩 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새벽 운동장 트랙을 돌며 생각이 많아졌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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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구간을 지나 다시 직선으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전에도 지나간 자리였는데 몇 바퀴를 돌고 나면 같은 곳이 또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운동장 트랙에서 달릴 때는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새벽이라 주변은 조용했습니다. 처음 몇 바퀴는 앞쪽을 보면서 달렸습니다. 몸이 아직 덜 풀렸을 때는 발을 옮기고 호흡을 맞추는 데 신경이 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면 엉뚱하게도 낮에 해야 할 일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의 몸은 트랙에 있는데 마음은 벌써 사무실에 가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같은 자리를 돌면 같은 생각도 돌아왔습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강변에서도 뛰고 언덕에서도 연습했습니다. 운동장 트랙은 그런 곳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곡선과 직선이 이어진 같은 길을 계속 돌면 됐습니다. 함께 훈련하는 날에는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게 됐습니다. 앞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살피기도 하고 내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지도 신경 썼습니다. 그러다 혼자 뛰는 날이면 그런 것에서 조금 자유로웠습니다. 내 속도로 달릴 수 있으니 편할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용히 뛰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가 어제 끝내지 못한 일이 따라왔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 끝나는가 싶으면 사무실 일이 또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은 제자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날에는 운영비 걱정이 남았습니다.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 날에도 미뤄 둔 일이 생각났습니다. 트랙을 돌면서 이런 방법은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조금 나아질까 생각했습니다. 한참 생각하고 곡선 구간을 돌아 다시 직선으로 들어오면 조금 전 했던 고민을 또 하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몸은 분명 계속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같은 문제를 몇 바퀴씩 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공장 식당 국물 냄새가 유난히 위로가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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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쪽으로 걸어가다가 따뜻한 국물 냄새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 냄새를 맡고서야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밥 먹을 시간을 기다릴 여유조차 별로 없었던 때였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처음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많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일을 따라가며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일하던 때였다 일하는 동안에는 기계가 계속 돌아갔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특별히 마음이 들뜨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을 멈추고 식당 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일하던 자리에서 떨어져 식당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느껴지는 음식 냄새가 있었습니다. 특히 따뜻한 국물 냄새가 나면 갑자기 속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그 냄새 하나가 몸을 먼저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말없이 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당에는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별말 없이 자기 앞에 놓인 밥을 먹었습니다. 저도 빈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날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도 흐릿합니다. 오래된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식판 위에 무엇이 놓여 있었는지까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국물을 떠먹던 느낌만은 남아 있습니다. 일이 고된 날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급했습니다. 다 먹으면 다시 기계 앞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식사 시간이 넉넉하게 쉬는 시간이라기보다 잠깐 일을 멈춘 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국물 한 숟가락에 몸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굳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습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얼...

겨울방학이면 학원 복도 분위기가 달라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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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문이 열릴 때마다 두꺼운 겨울 외투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생들은 목도리를 풀면서 복도를 지나갔고, 젖은 운동화 바닥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도 가끔 들렸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평소와 같은 학원인데도 복도의 움직임부터 달라졌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비슷한 시간에 몰려왔습니다. 방학이 되면 달랐습니다. 오전부터 오는 학생이 있었고 조금 늦게 나타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학생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제각각이 되면서 복도에도 빈 시간과 붐비는 시간이 섞여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학원에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오전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 학교 다닐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집에서 늦게 일어나 급하게 나온 듯 머리가 눌린 학생도 있었습니다. 가방 안에 문제집을 여러 권 넣어 가지고 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으면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시간이 조금 넉넉할 것 같았지만 아이들의 얼굴까지 모두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가방을 옆에 두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같은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복도 끝에 그냥 서 있던 학생 한 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 끝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보였습니다. 오전부터 여러 수업을 다니다가 온 것인지, 추운 밖에서 들어와 몸이 아직 굳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괜히 짐작해서 묻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학생 가까이에 의자를 끌어다 놓았습니다. 잠시 앉아 쉬게 하고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오래 만나다 보니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묻는 것보다 그냥 조금 기다려주는 편이 나아 보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 어른들의 마음도 바빠졌다 겨울방학이 ...

장바구니 물가를 보며 예전과 다르다고 느껴졌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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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받아 들었는데 바로 주머니에 넣지 못했습니다. 찍혀 있는 금액을 한번 더 봤습니다. 장바구니 안에도 다시 눈이 갔습니다. 특별히 많이 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금액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잘못 계산했나 싶어 물건을 하나씩 바라봤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가격을 다시 따져본 것은 아닙니다. 영수증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장바구니를 챙겼습니다. 아주 평범한 장보기였는데 그날은 계산대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됐습니다. 생활비 걱정은 전에도 늘 있었다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사무실을 운영할 때도 돈 걱정은 늘 따라다녔습니다. 임대료와 여러 고정비가 먼저 생각났고, 사무실이 조용한 날에는 돈을 쓰는 일도 자연스럽게 조심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먹고 쓰는 물건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생활비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사던 것을 사고 필요한 것을 채우는 일이니 대충 이 정도 들겠다는 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감이 자꾸 빗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슷하게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계산할 때 받는 느낌은 전과 달랐습니다. 물건을 들었다가 가격을 한번 더 봤다 장을 보는 행동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집었다가 가격을 한번 더 보게 됐습니다. 꼭 지금 사야 하는지 잠깐 생각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던 물건도 손에 든 채 잠시 망설였습니다. 무엇이 얼마에서 얼마로 올랐는지 숫자로 적어가며 비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물가를 따져본 기억보다 물건 하나를 집을 때 생긴 짧은 망설임이 더 또렷합니다. 계산대에서 금액을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이 산 것 같지 않은데 예상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지면 장바구니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특별한 물건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끼겠다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 달라졌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이런 변화는 거창한 말보다...

하루 두 가지 일을 하며 몸보다 마음이 지쳤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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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을 끄자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도로 소리도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집에 들어가 씻고 누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화면을 확인하니 다음 날 챙겨야 할 연락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차 문을 바로 열지 못했습니다.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몸은 오늘 일을 끝냈는데 머릿속에서는 벌써 내일 일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던 시절에는 이런 순간이 자주 있었습니다. 한가한 날이 오히려 마음은 더 바빴다 낮에는 사무실 일을 챙겼습니다. 예약이 있는 날에는 시간을 맞춰 사람을 만나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바쁜 날은 몸은 힘들어도 생각할 틈이 적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날이 문제였습니다. 사무실이 하루 종일 조용하면 괜히 휴대전화를 몇 번씩 들여다봤습니다. 벨이 울린 것도 아닌데 화면을 켜보고, 혹시 연락을 놓친 것은 아닌지 확인했습니다. 전화가 오면 반가웠습니다. 아무 연락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임대료도 생각났고 생활비도 생각났습니다. 사무실에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나갈 돈까지 함께 멈추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일을 함께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몸이 좀 힘들더라도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이 되면 전혀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두 번째 일을 시작하면 주변 풍경부터 달라졌습니다. 낮에 사무실에서 보던 사람들의 얼굴 대신 밤거리의 간판과 자동차 불빛을 보게 됐습니다. 낮의 일이 끝났다고 해서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사 시간을 놓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간단한 것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움직였습니다. 늦은 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저처럼 아직 하루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보였습니다. 편의점 앞 작은 탁자에서 컵라면을 먹는 사람...

첫차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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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천호동 골목은 낮에 보던 동네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논이 남아 있어서 겨울 새벽이면 골목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 매서웠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했고, 가방을 메고 걷다 보면 제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종로 쪽 새벽 단과학원에 가기 위해 첫차를 탔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던 때였습니다. 거기에 새벽 공부까지 하려니 잠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로등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보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이 오고, 조금 있다 또 한 명이 오면서 어느새 몇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도 있었고, 작은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밤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인지, 저처럼 이제 하루를 시작하러 나온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류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올 때마다 어둠 속 얼굴이 잠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저를 봤다면 저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을 겁니다. 가방을 메고 있으니 학생처럼 보였겠지만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고, 새벽에는 종로까지 공부하러 갔습니다. 잠을 충분히 잘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첫차에 타면 책이라도 조금 봐야겠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 문이 열리고 따뜻한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무...

비 오는 날 달리기 연습이 더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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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람보다 물이었습니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었고, 트랙 위에도 빗물이 얇게 번져 있었습니다. 비가 아주 세게 내리는 날은 아니었지만 우산 없이 오래 서 있으면 옷이 금방 젖을 정도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을 텐데 그날은 이상할 만큼 한산했습니다.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바라봤습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도 안 뛰고 가기는 또 아쉬웠습니다. 결국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천천히 운동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시원해서 괜찮았다 처음 몇 바퀴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이 시원하게 느껴졌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제 발소리만 들으며 달릴 수 있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가 오히려 재미있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운동복이 젖으면서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양말에도 서서히 물기가 들어왔습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운동화 안에서 축축한 느낌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니 계속 발 쪽으로 마음이 갔습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밟던 운동장 바닥도 그날은 자꾸 내려다봤습니다. 혹시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싶어 발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디뎠습니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넘어지지 않는 게 먼저였습니다. 말없이 마주친 사람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운동장을 돌다가 다른 사람 한 명과 마주쳤습니다. 그 사람도 비를 맞으면서 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지나갈 때 서로 한번 웃었습니다. 무슨 말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표정만 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바퀴가 지나자 그 사람은 먼저 운동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누가 시킨 운동도 아니었습니다. 그...

겨울 야간조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 모이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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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문을 나서던 순간이 아직도 이상하게 또렷합니다. 안에서는 기계 열기 때문에 추운 줄도 몰랐는데, 밖으로 한 발 내딛자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습니다. 손끝은 금세 얼얼해졌고, 작업복 지퍼를 목까지 올린 뒤 두 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습니다. 하루 종일 귀를 채우던 기계 소리는 멀어지고, 그 자리에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들어왔습니다. 공장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야간조가 끝나는 시간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거의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낮에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바쁘게 일하던 사람들이었지만, 밖으로 나오면 모두 비슷한 얼굴이 됐습니다. 피곤했고,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금세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로 찼습니다. 기름때가 조금 묻은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낡은 가방 안에 빈 도시락통을 넣어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한 사람들은 의자가 비면 말없이 먼저 앉았습니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두 손을 비비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참 신기했던 게, 평소 말이 많던 사람들도 그 시간만 되면 조용해졌습니다. 일을 하면서는 그렇게 농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정류장에서는 버스 오는 방향만 바라봤습니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피곤한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멀리 불빛만 보여도 모두 고개를 들었다 버스가 늦어지는 날이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손목시계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작은 목소리로 "오늘은 왜 이렇게 안 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대답 대신 고개만 한번 끄덕였습니다. 멀리서 불빛이 나타나면 다들 거의 동시에 도로 쪽을 바라봤습니다. 버스인가 싶어 몸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른 차라는 걸 알면 다시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몇 번씩 반복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이상하게 아직 기억납니다. 솔직히 그때는 버스 몇 분 늦는 것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

CRT 모니터 소리 가득하던 컴퓨터 학원 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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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해가 금세 넘어갔습니다. 학원 간판에 불이 켜질 무렵이면 거리에는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두꺼운 점퍼를 입은 학생들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볼은 추위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교실 안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온기가 감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저녁은 늘 같은 시간에 시작됐는데도 하루하루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들리던 소리 학원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 목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와 CRT 모니터 전원을 켤 때 들리던 특유의 "삐-" 하는 소리였습니다.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는 동안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만지거나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처럼 얇은 모니터가 아니었습니다. 책상 위를 큼직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교실이 훨씬 좁아 보였고, 복도를 오갈 때도 몸을 살짝 비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런 모습도 하나의 시대였습니다. 키보드 소리가 교실을 채우던 시간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빠르게 타자를 치는 학생도 있었지만 자판을 하나씩 확인하며 천천히 입력하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저는 교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화면을 살펴보고, 막히는 학생이 있으면 옆에 서서 같이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모니터 뒤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은근히 올라왔습니다. 겨울이었지만 교실 안은 생각보다 포근했고, 오래 앉아 있으면 외투를 벗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복도에는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고, 문이 열릴 때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며 아이를 찾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오늘은 몇 타 나왔어요." 하며 서로 기록을 비교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 웃음소리 덕분에 늦은 시간의 피곤함도 잠시 잊곤 했...

중년이 되고 나서 새벽 일이 더 무겁게 느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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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이 조용히 닫혔다. 새벽이라 그런지 버튼을 누르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창밖은 아직 검은빛이 남아 있었고, 아파트 복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현관문을 나설 때마다 얼굴에 닿는 서늘한 공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받아들이는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지는 날이 있다. 세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멀리서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청소차가 천천히 골목을 지나간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거리는 이미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새벽이 두렵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새벽이 오히려 편했다. 공장에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고, 야간학교를 다니며 첫차를 타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부족해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몸은 피곤했지만 움직이는 속도만큼은 빨랐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힘들다기보다 익숙한 일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거워졌다 중년이 되고 나서는 같은 새벽인데도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고, 신발을 신으면서도 허리를 한 번 더 펴게 됐다. 괜히 무릎도 한 번 움직여 보고 가방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뒤에는 새벽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됐다. 호출을 기다리며 편의점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첫차를 기다리는 청소 노동자, 조용히 출근하는 경비원까지. 말은 거의 없었지만 얼굴에는 익숙한 하루를 시작하는 표정이 있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인사가 큰 힘이 되는 날도 있었다. 생각이 많아진 새벽이었다 솔직히 몸이 약해져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새벽이 무겁게 느껴진 건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가족 생각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도 떠올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젊었을...

새벽 편의점 앞 사람들 모습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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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문이 열리면서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는데도 편의점 안은 환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대리운전을 마치고 차를 넘겨드린 뒤라 몸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캔커피 한 잔이 간절했던 밤이었다. 커피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조용한 거리에서 더 크게 들렸다. 갓 데운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고, 계산대 앞에는 한 명씩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은 괜히 사람들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됐다. 잠깐 쉬어 가는 사람들이 모였다 밖으로 나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사람들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작업복 차림의 젊은 사람은 컵라면을 급하게 먹고 다시 트럭에 올랐다. 배달 가방을 내려놓은 라이더는 휴대전화를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따뜻한 커피를 들고 나갔다. 편의점 앞 의자에는 택시 기사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허리를 천천히 펴더니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누구도 크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모두 피곤해 보였지만 자기 하루를 끝내거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다르게 보였다 솔직히 예전에는 새벽 편의점을 그냥 잠깐 들르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나서는 느낌이 달라졌다. 같은 시간인데도 모이는 사람들은 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공사 현장에서 막 나온 사람들 같았고, 어떤 날은 밤새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보였다. 의외로 서로 말을 섞지 않아도 비슷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나 역시 다음 호출을 기다리며 잠깐 쉬는 사람이었다. 누구 하나 특별한 사연을 말하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하루를 버텨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계산대 직원의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이상하게 아직 기억나는 건 계산대 직원의 표정이다. 졸린 기색은 분명 있었는데도 들어오는 사람마다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 거 드릴까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말인데...

첫 마라톤 출발선 앞에서 괜히 긴장됐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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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끈을 또 한 번 당겨 묶었다. 이미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왠지 헐거운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새벽이었다. 입김은 하얗게 흩어졌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발걸음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 시간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지만 출발선 근처는 어느새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가볍게 뛰며 몸을 푸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사람까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괜히 나만 긴장한 것 같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회자의 안내 방송도 또렷했고, 번호표를 만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귀에 들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침착해 보였다. 그런데 나만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솔직히 달리는 것보다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힘들었다.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록도 모르고 코스도 낯설었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 내가 가장 초보처럼 느껴졌다. 막상 지나고 보니 첫 마라톤은 다리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하는 경기였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던 짧은 순간 출발 직전이 되자 주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수백 명이 함께 서 있었지만 모두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목시계를 눌렀고, 누군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괜히 따라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참 신기했던 게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직 한 걸음도 뛰지 않았는데 심장은 이미 결승선 근처까지 달려간 것처럼 뛰고 있었다. 출발선만 넘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사람들은 한꺼번에 뛰지 않았다. 처음에는 걷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앞사람 등을 따라 조금씩 발을 옮기다 보니 신기하게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고, 길가에서 손을 흔들...

새벽 공장 출입문 앞 묵묵히 걸어 들어가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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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출입문 앞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하늘은 검푸른 색에 가까웠고, 겨울 새벽 공기는 코끝을 찌르듯 차가웠다. 그 시간에 길을 걷는 사람들은 말이 많지 않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 목도리를 코밑까지 올린 사람, 도시락 가방을 손에 든 사람들이 하나둘 공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는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아직 동네 불빛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시간이었고, 버스 정류장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공장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늘 비슷한 시간에 나타났다. 서로 얼굴은 알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짧게 “왔어?” 하고 인사만 하고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말없이 모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공장 출입문 앞에는 자연스럽게 줄이 생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다들 자기 시간이 몸에 배어 있었다.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그런 풍경이 너무 당연했다. 먹고살려면 일해야 했고, 일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춥다고 안 갈 수도 없고, 피곤하다고 빠질 수도 없었다. 얼굴에는 잠이 덜 깬 표정이 남아 있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 기억나는 건 그 조용함이다. 시끄러운 말보다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던 새벽이었다. 공장 안보다 출입문 앞이 더 오래 남았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는 금방 달라졌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작업 준비가 시작됐다. 장갑을 끼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각자 맡은 자리로 흩어졌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작업장 안 모습보다 출입문 앞 풍경이 더 오래 남아 있다. 해도 뜨기 전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던 뒷모습 말이다. 젊은 사람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사람도 있었다. 누구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고, 누구는 낡은 작업복 위에 두꺼운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각자 집에서 두고 온 사정이 있었을...

대치동 학원가 새벽 불빛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던 날

편의점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따뜻한 공기가 잠깐씩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앞에 서 있던 학생들은 종이컵 음료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겨울 끝자락의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시험을 앞둔 마음 때문이었는지 다들 말수가 적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강의를 마치고 상담을 하고, 학부모 전화를 받고, 교실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유리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로 가득했던 대치동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날은 거리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학원 간판은 아직 몇 군데 켜져 있었다. 건물마다 층층이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밝기는 충분했는데 차갑게만 보였다. 길 건너편에서 학원 건물을 바라보니 창문 너머로 아직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문제집을 넘기는 모습이었다. 어떤 학생은 잠깐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그때는 그런 장면을 매일 봤다.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봤고, 운영을 하면서도 늘 보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유독 그날은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도시 전체가 조용히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 앞에 서 있던 학생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끼리 장난도 치고 웃음소리도 들렸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시험 기간이 가까워서였는지 피곤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잠깐 쉬러 나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의외로 그런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성적표를 받던 순간보다, 합격 소식을 들었던 순간보다, 편의점 앞에서 말없이 서 있던 학생들 표정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 나이에는 누구나 보이지 않는 짐을 하나씩 들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버티며 살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도 여유로운 사...

방과후 컴퓨터 수업이 학생들에게 인기였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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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도 컴퓨터실 가는 거 맞죠?” 학교 복도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졌다. 종이 울리기 전부터 문 쪽을 바라보던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컴퓨터실은 아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공간이었다. 늦은 오후 햇빛이 창문으로 길게 들어오던 날이 많았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컴퓨터실 앞에는 늘 작은 줄이 만들어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 때문에 복도가 시끌시끌해지곤 했다. 컴퓨터실 문이 열리던 순간 이상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소리가 있다. 본체 전원 버튼을 누르면 들리던 "위잉" 소리다. CRT 모니터가 천천히 밝아지고 검은 화면 위에 글자가 하나씩 나타나면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신기해했다. 그 시절에는 집에 컴퓨터가 없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컴퓨터를 만져볼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자리에 앉았다. 어떤 학생은 친구 화면을 구경하러 다녔고, 어떤 학생은 마우스를 먼저 잡아보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그때는 작은 축제 같았다. 교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 웃긴 건 평소 수업 시간에 졸던 학생들도 컴퓨터실에서는 눈이 반짝였다는 점이다. 교실에서는 조용하던 아이가 그림판을 켜면 가장 적극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름을 크게 써서 꾸미고, 색을 바꾸고, 친구 얼굴을 흉내 내어 그림을 그리면서 깔깔 웃었다. 성장기 학생들을 상담하던 시절에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억지로 시켜서 움직이는 것보다 스스로 재미를 찾을 때 훨씬 집중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아마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커서 하나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고,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바뀌는 것 자체가 재미였다. 나 역시 컴퓨터에 설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컴퓨터를 잘 알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공장 야간근무를 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니던...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현실이 달라졌다고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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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리모컨을 괜히 내려놓게 되던 밤이었다 어느 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던 밤이 있었다. 창문은 열어놨는데 바람은 안 들어오고, 눅눅한 여름 냄새만 방 안에 가득 남아 있었다. 작은 식탁 위에 우편물 몇 장 올려놓고 하나씩 보다가 전기요금 고지서를 펼쳤다. 그런데 숫자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봐도 금액은 그대로였다. 괜히 에어컨 리모컨부터 내려놨다. TV 소리는 작게 나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솔직히 그날 이후로는 에어컨 버튼 누를 때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그냥 열심히 살면 어떻게든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활이라는 게 생각보다 작은 숫자들에 흔들린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밤늦게 불 끄던 학원 복도가 아직 기억난다 그 시절 학원 운영할 때도 여름 전기요금은 늘 부담이었다. 대치동 학원가는 밤이 늦어도 완전히 조용해지지 않았다. 11시 넘으면 학생들 하나둘 내려오고 학부모 차가 골목 끝에 잠깐 멈췄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교실 안은 더웠다. 에어컨 계속 돌고 CRT 모니터 열까지 올라오면 복도 공기가 후끈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얇은 모니터가 아니었다. 컴퓨터 한 대만 오래 켜놔도 뒤쪽에서 열기가 확 올라왔다. 학생들 다 보내고 혼자 남아 형광등 하나씩 끄는데, 이상하게 탁 하고 불 꺼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던 날들이 있었다. 괜히 전기 아껴야 할 것 같아서 복도 불도 빨리 껐다. 막상 해보면 학원 운영이라는 게 거창한 사업 느낌보다 생활에 가까웠다. 전기요금, 월세, 복사용지 값, 컵라면 값 같은 게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떤 학부모는 상담 끝나고 나가면서 “요즘은 집에서도 에어컨 마음 놓고 못 틀겠어요” 하고 웃듯 말했는데 표정은 전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때는 왜 다들 그렇게 조용히 생활비 이야기를 했을까 싶다. 고지서 한 장이...

학원에서 먹고 자며 강사 생활을 버텼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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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넘은 대치동 골목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골목 끝 편의점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겨울이었는데 바람은 차갑고, 학원 건물 유리문에는 수증기 김이 서려 있었다. 밤 11시쯤 되면 학생들이 하나둘 내려왔다. 학부모 차가 잠깐 골목에 멈췄다가 다시 빠져나가고, 어떤 학생은 졸린 얼굴로 가방 메고 버스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그 시절에는 대치동이 지금보다 훨씬 정신없었다. 학원 불빛은 새벽 가까이까지 켜져 있었고, 편의점 앞에는 컵라면 먹는 학생들이 꽉 차 있었다. 나는 그 시간부터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학생들 다 보내고 나면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칠판 지우개 먼지 냄새는 그대로 남아 있고 CRT 모니터 전원 불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집보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작은 교실 뒤편에 접이식 매트 하나 깔아놓고 생활했다. 낮에는 강의하고 밤에는 교재 만들고 새벽에는 잠깐 눈 붙이고 다시 학생들 맞아서 강의를 하는 생활이었다. 가끔 새벽에 눈 떴을 때 천장이 낯설지 않으면 “아 오늘도 학원에서 잤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먹고살려고 버티던 시간이 더 길었다 사람들은 학원 강사라고 하면 좀 안정적인 직업으로 봤다. 근데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다들 버티고 있었다. 특히 IMF 지나던 시절에는 분위기가 정말 무거웠다. 실직하고 컴퓨터 배우러 오는 사람들 많았다.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하나라도 따야 다시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공장 야간근무하다가 낮에 학원 오는 사람도 있었고, 주부 인터넷 교실에서는 이메일 만드는 것만으로도 다들 신기해 했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가 지금처럼 당연한 게 아니었다. 마우스 잡는 것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마우스를 책상에서 들고 움직여야 화면이 빨리 가는 줄 알고 허공에서 흔들다가 교실이 한바탕 웃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학원 칠판 앞에서 혼자 강의 연습을 반복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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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강단 앞에 섰을 때는 손이 먼저 떨렸다 솔직히 그때는 학생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좀 신기했다. 원래부터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다. 일단 말을 시작하면 술술 설명이 나오고 학생들을 웃기기도 하고 분위기도 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하고 보니까 전혀 아니었다. 처음 칠판 앞에 섰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에 분필 쥐고 있는데 손바닥에서는 땀이 계속 났다. 분명 집에서도 강의 연습을 했다. 교재도 몇 번이나 읽었다. 그런데 학생들 앉아 있는 교실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이 갑자기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 학원 자체가 지금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지금처럼 유튜브 틀어놓고 배우는 시대도 아니었고, 검색 한번 하면 설명이 쫙 나오는 시대도 아니었다. MS-DOS 명령어 하나 외우려고 종이에 적어 다니던 때였다. 마우스 처음 잡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분은 마우스를 책상 위에서 들고 움직여야 화면이 빨리 움직이는 줄 알고 허공에서 흔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다들 진지했다. 학원 문 닫고 나면 진짜 공부가 시작됐다 학원 운영하면서 제일 많이 남아 있었던 공간이 교실이었다. 낮에는 학생들 가르치고 상담하고 정신없었는데 밤 되면 갑자기 조용해졌다. 형광등 몇 개만 켜져 있고 복도는 어두웠다. 그 상태로 칠판 앞에 혼자 서서 계속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렇게 설명하면 되나…” “아니다. 이건 너무 어렵다.” “학생 입장에서 다시 말해야겠다.” 이런 걸 몇 시간씩 반복했다. 참 신기했던 게 혼자 연습할 때가 오히려 더 긴장됐다. 빈 교실은 조용해서 내 부족한 게 너무 잘 들렸다. 말이 자꾸 꼬였다. 분명 아는 내용인데도 설명하려고 하면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칠판에 글씨 쓰다가 멈추고, 다시 지우고, 또 쓰고 반복하고 그랬다. 한번은 너무 긴장해서 혼자 연습하는데도 ...

빵카 보초 근무 중에도 컴퓨터 공부를 놓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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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시절에는 컴퓨터 공부가 당장 내 삶을 바꿔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냥 주변에서 앞으로는 컴퓨터 모르면 힘들어진다는 말을 자꾸 했다. 그런데 나는 낮에는 군대에서 주어진 일하고 밤에는 빵카 보초 근무까지 서고 있었으니까, 몸이 늘 피곤했다. 겨울에는 손끝이 얼 정도로 추웠고, 새벽 공기는 이상하게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공부냐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작은 컴퓨터 책 한 권은 늘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계속 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신기하다. 새벽 근무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빵카 보초 근무라는 게 화려한 일은 아니었다. 밤새 조용한 곳 지키면서 시간 보내는 일이었다. 가끔 바람 소리만 들리고, 멀리 새보초 교재하는 소리 등이 희미하게 들릴 때가 있었다. 그 시간에는 괜히 별생각이 다 나기도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컴퓨터 공부를 왜 시작했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대단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계속 지금처럼 기계만지는 공장 생활을 계속 하면서 살게 될까 봐 답답했던 마음이 더 컸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더 복잡했다. 그래서 근무 중 조용한 시간 생기면 손전등 켜놓고 컴퓨터 책을 펼쳤다. 전산개론, 코볼, 포트란, 어쎔블리 명령어 같은 게 적혀 있었는데 영어도 많고 낯선 단어투성이였다. 여러번 읽어 보아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줄이라도 더 읽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이해는 안 되는데 덮고 싶지는 않은 그런 느낌. 막상 해보니까 공부라는 게 꼭 재미있어서 하는 건 아니더라. 그냥 마음이 멈추지 않게 하려고 붙잡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코딩하는 것도 다들 어려워했다 나중에 컴퓨터 학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느꼈다. 그때는 컴퓨터 배우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공장 다니던 사람, 야간학교 다니던 사람, 취업 때문에 학원 온 사람들까지 다들 비슷했다. 참 신기했던 게 있다...

카드 펀칭 시절 전산교육이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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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산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부터 어색했습니다. 그전까지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종이에 손으로 적는 일이 더 익숙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할 때도 그랬고, 다른 일을 할 때도 종이와 연필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교육장에서는 달랐습니다. 눈앞에는 낯선 기계가 있었고 화면을 보면서 키보드를 눌러야 했습니다. 카드 펀칭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도 처음에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컴퓨터가 지금처럼 집집마다 있고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었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을 보면 뭔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전산교육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배우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종이에 적던 습관부터 바꿔야 했습니다 그 시절 프로그램을 공부할 때는 지금처럼 화면에 내용을 입력하고 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코딩시트의 작은 칸에 프로그램을 먼저 적었습니다. 한 줄씩 적은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렇게 작성한 내용을 키펀칭으로 옮기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과를 받아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고쳐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잘못된 글자를 바로 지우고 다시 입력하는 것과는 느낌부터 달랐습니다. 포트란과 코볼, 어셈블리 같은 말도 하나씩 익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의 내용보다 낯선 용어 자체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조금씩 익혀갔습니다. 결과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것도 낯설었습니다 요즘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때는 기다리는 과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적은 프로그램을 바로 화면에서 실행해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코딩시트에 적고, 키펀칭을 거치고, 출력된 내용을 다시 받아 살펴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 ...